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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상품 경제를 확장한 설탕

16세기 콜럼버스에 의해 구대륙과 신대륙이 활발한 교역을 했지만, 17세기에 유럽의 경제는 정체되었다. 신대륙은 유럽에 팔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플랜테이션 농장이 다수 존재했다. 유럽에서 생산되기 어려운 커피나 설탕 등을 식민지에 재배했다. 유럽 음식의 세계화와 자본주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설탕이다. 17세기는 뉴턴으로 인해 과학혁명의 시대였다. 박물학이 유행해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동식물의 표본과 지식이 유럽으로 모였다. 유럽인은 지식을 토대로 지구의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농작물은 설탕을 만드는 사탕수수다. 설탕은 브라질과 카리브해의 플랜테이션에서 대량 생산되었다. 세계의 주요 상품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다. 사탕수수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 뉴기니지만 인도에 의해 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기원전 1세기부터 설탕이 정제되기 시작했지만, 설탕의 재배와 제조가 왕성하게 이루어진 것은 9세기 초였다. 유럽에는 십자군 전쟁 때 설탕이 전해졌는데 매우 고가였고, 소화를 돕는 약품으로 사용되었다. 14세기 포르투갈인은 사탕수수를 재배해 큰 이윤을 남겼다. 1580년 포르투갈의 식민지 브라질에 옮겨 심었고, 17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사용된 설탕은 거의 브라질에서 공급되었다. 17세기에 네덜란드가 사탕수수 재배에 적극 가담했고 영국에 설탕 제조법을 알려준다. 영국은 16세기 바베이도스 섬과 자메이카 섬을 점령해 두 섬에 플랜테이션을 만들어 대규모 설탕 생산을 했다. 프랑스는 아이티를 차지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시작해 영국과 맞먹는 주요 생산지로 만들었다. 설탕 생산에 필요한 흑인 노예들 때문에 서인도제도는 설탕 혁명이 일어났다. 사탕수수는 수확 후, 단맛이 빠르게 빠지기 때문에 많은 인력이 빠르게 만들어야 했다. 100명이 연간 80톤의 설탕을 생산했다. 18세기 설탕은 사치품이 아니라 가난한 가정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설탕은 차나 커피와 결합해 새로운 기호식품을 만든다.

근대 사회 형성에 기여한 홍차

설탕이 있기에 티, 코코아, 커피, 홍차 등이 존재했다. 18세기 영국에 중국산 홍차가 대량 수입되면서 설탕은 빛을 발한다. 홍차는 영국의 국민 음료다. 처음 네덜란드인이 중국의 차를 유럽에 전파한 것은 16세기 무렵이다. 그때는 따뜻한 감기약 정도로 여겨져 수요가 많지 않았다. 차를 마시는 습관은 계속 퍼져나갔지만 고액의 소비세가 부과되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가난한 사람들도 살 수 있는 저렴한 홍차가 나왔다. 홍차의 유일한 수출국인 중국이었다. 영국은 홍차에 200%의 과한 세금을 부과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세금 때문에 밀수한 홍차를 소비했다. 영국은 홍차의 판매 부진으로 재고를 떠안은 동인도회사를 구제하려고 재고품을 식민지에 떠넘긴다. 홍차를 밀수하던 상인들은 위기를 느끼고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린 홍차가 육지에 내리는 것을 막으려 한다. 인디언으로 변장한 사람들이 배에 숨어들어 홍차를 바다에 던지면서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한다. 비슷한 일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에 무리하게 지원해준 프랑스도 재 졍이 바닥나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홍차에 대한 과세 문제로 근대 사회의 형성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은 식문화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유럽을 대표하는 기호식품 커피

17세기 유럽에는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들어왔다. 당시 커피콩은 아라비아반도 예멘의 모카항에서만 독점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커피콩으로 막대한 부를 쌓던 이슬람 상인들은 커피 종자나 모종의 반출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볶은 커피콩만 수출했다. 커피의 상품 가치를 눈여겨본 네덜란드인들은 생두 반입에 성공한다. 16세기 스리랑카 실론섬과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재배에 도전하지만 홍수와 지진으로 실패한다. 18세기 재시도 끝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커피 녹병이 발생해 실패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식물원에는 100그루 정도의 커피묘목이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시장은 묘목 일부를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선물한다. 루이 14세는 해균 장교에게 묘목을 주었는데, 장교는 카리브해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에 커피나무를 심었다. 잘 적응한 커피나무는 무성하게 번식했고 자메이카로 옮겨 심어 블루마운틴이라는 유명한 커피가 탄생한다. 네덜란드도 브라질로 커피 묘목을 옮겨 심었다. 18세기 브라질은 최대 커피 산지로 떠올랐고, 현재도 세계 커피의 생산량의 1/3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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